최근 많은 음반제작사에서 과거에 녹음되었던 음반들을 다시 마스터링 작업을 해서 한정판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전투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비틀즈 리마스터링 박스셋은 현재 완전 품절된 상태이고, 과거 핑크 플로이드나 레드 제플린 역시 한정판 박스셋이라는 이름으로 제법 쏠쏠한 재미를 본 적이 있다.
뭐. 한정판이라면 똥이라도 사먹을 마니아들에게 이러한 기획물들은 당연한 타겟이 되겠지만, 나같이 순수(?)한 음악애호가들에게는 과연 이러한 박스셋들이 제작사의 불순한 의도를 눈 감아주고 살만한 값어치가 있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리마스터링의 열품이 부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과연 90년대 너바나 이후에 정말 음악연보에 레전드라고 이름을 올릴만한 슈퍼스타가 있었는가? 나는 없다고 본다. 이러한 스타의 부재와 현재까지 불고 있는 복고열풍의 맞물림이 그 열풍의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박스셋 외에 과거 LP로 출시되었던 음반을 CD 사이즈로 규격화하여 LP 미니어처 시리즈로 나오고 있다. 요런 것들 역시 LP시대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 이와, 나처럼 LP시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이에게 퍽이나 매혹적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참 구시대의 유물 가지고 빨고, 빨고, 또 빨고, 쪽쪽 빨아먹고 있는 음반사 경영자들은 존 레논 비석에 다이아몬드라도 양심상 몇부 박아주어야 하지 않나 싶다.
일단, 몇종의 리마스터링 음반을 들어본 결과 몇가지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많아진 음량
음량을 불리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굉장히 간단하다. 똑같은 음악이라도 볼륨노브를 돌려가면서 들어보면 당연히 크게 들으면 좋게 들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크게 들으면 잘 들리니까.
2. 늘어난 저역
저역이 늘어나는 효과는 어떨까? 역시 간단하다. 저역이 늘어나면 일단 가슴으로 느껴지는 정도가 다르다. 나이트 가봐라. 거지같은 최신가요도 나이트에서 저역 부밍된 상태로 들으면, 바로 흥분된다. 요건 근육주사보다 혈관에 맞는 주사가 훨씬 효과가 좋은 것과 같은 이치이니라.
3. 또렷이 들리는 각 파트별 악기의 음상
음악을 듣다보면, 뭐랄까 왠지 각 파트별 악기의 연주도 따로 귀 기울여 듣고 싶어진다. 그러나 직접 악기를 연주해보지 않거나 자주 음악을 들어보지 않은 이에게 예전의 음반들은 되게 무뎌지게 느껴지기 마련이고, 리마스터링된 음반을 듣는 순간 또렷이 들리는 각 악기들의 연주에 이전과는 모를 쾌락을 느끼게 되며, 막연히 리마스터링이 좋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위의 1,2,3의 효과가 지나치면 결국 하나의 종점으로 향하는데 바로 ‘피로’ 이다.
핑크플로이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음반에서 느끼는 건데 한번에 4곡 이상을 연달아 들을 수가 없다. 분명히 또렷하고 박진감 넘치는데 음악 자체에서 주는 매력을 느끼기에는 그 리마스터링의 효과가 너무나 자극적이어서 음악을 듣는 건지 귀를 혹사시키는 것인지 분간이 어렵다. 특히나 가장 최근에 나온 비틀즈의 스테레오 리마스터링은 정말로 가관이다.
애초에 모노로 녹음된 음원을 원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스테레오로 분리를 해버렸으니,(물론, 당시에는 의도라기보다는 기술력의 부족으로 모노로 녹음을 해왔지만,) 아무리 세계적인 초일류 기술자가 마스터링을 했어도 음악 자체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뚜렷해진 음상과는 반비례하게 흐려지기 마련인 것이다.
결국, 내가 듣는 리마스터링 음반은 재건축된 불국사를 바라보는 그 심정 그대로였다. 과거의 찬란했던 유산이지만, 그 시대의 향수는 전혀 느낄 수 없고, 어정쩡하게 도대체 이게 뭐가 어쨌다는 건가라는 생각에 휩싸이게 된다. 혹은 열발치에서 진한 화장을 한 여자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 멀리서 언뜻 보면 예쁘지만, 가까이하면 할수록 코를 찌르는 역한 화장품 냄새, 그리고 만지면 묻을 불순한 가루들이 오히려 나를 멀리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옛것을 즐기려면, 쌓였던 먼지조차 그리고 세월의 바람을 맞고 입은 그 상처마저 함께 즐겨야 하는 것이 리얼한 애호가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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