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7일 일요일

가끔은 절실히 원래 그 자리에 있고 싶어할 때가 있다.

 

긴 세월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살아오면서 어떤 일들을 시도할 때,

그 일의 성공여부는 처음 출발선에 올라섰을 때의 마음가짐 상태에 따라 그 결과가 갈리고는 했었던 것 같다.

 

과연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을 때 상대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까하고 스스로 물어보자면,

차분한 마음, 들뜨지도 않고, 쳐지지도 않은 평균선의 마음상태일 때 비교적 내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던 것 같았고, 그 결과물 역시 내가 납득할만한 수준을 늘 유지해주었던 것 같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요즘 무언가를 시작할 때 차분한 평균선의 마음가짐을 갖추기 위해 자주 듣는 곡이다.

왜 이 곡을 듣게 되었는지는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듣는 순간 느낀 그 기분은 지금도 또렷히 기억이 나며, 지금도 들을 때마다 그 유쾌했던 기분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첫 아리아에서 G음이 두번 울리면서 나를 원래 내가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신호가 종소리처럼 울려온다. 그리고 느릿한 멜로디가 놀라울 정도로 나를 빨아들이고 다음부터 펼쳐질 30곡의 변주곡을 들을 준비를 하게 해준다.

 

30곡의 변주곡들은 적당하고 비교적 일률적인 빠르기로 펼쳐지며, 선율은 부드러운 곡률의 파형을 그리면서 나의 기분을 적당히 들었다 놨다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를 내가 있어야 할 곳, 원래의 그 자리에 차분히 올려놓는다.

 

그리고, 첫 아리아가 다시 한번 반복되면서 이 곡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처럼 한번 듣고 나면, 마음 속은 고요해지고,

시작할 무언가에 대한 이유없는 두려움과 망설임은 사라지고,

시작할 무언가에 몰두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갖쳐주고 이 곡 자체는 사라진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여전히 첫 아리아를 제외하고는 머릿속에 이 곡의 선율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듣고 난 후의 고요하고도 유쾌한 기분의 그 긴 여운은 사라진 선율의 기억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 첨부된 음반 자켓은 골드베르크 음반 중에 가장 유명한 1955년에 발표된 글렌 굴드의 연주 자켓이다.

모노로 레코딩되어 비록 협소하게 들리지만, 아찔한 속도로 치닿는 연주는 듣는 내내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해준다. 훗날 많은 피아노 연주가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하게 한 일등 공신 역할을 한 음반으로 골드베르크 연주를 논할 때 절대 빠질 수가 없는 음반이다.

 

그 외에 글렌 굴드의 1981년 음반, 빌헬름 켐프의 연주, 안드라스 쉬프의 ECM에서의 연주, 최근에는 예프게니 코롤리오프의 연주가 많이 추천되고 있다.

 

그리고 추가로 추천하는 음반은 안드레이 가블리로프의 연주이다. 개인적으로 AABB 구조로 도돌이표를 모두 지킨 버전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러면 러닝타임이 애매해져서 코롤리오프 경우는 2장으로 엮어서 나온 상황이다. 여튼 한장에 AABB 구조로 연주되었으며, 음색은 쉬프의 ECM 신보에 조금은 못 미칠 수도 있지만, 연주의 밸런스나 담백한 맛에 있어서 쉬프의 ECM 신보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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